사진 작가들에게는 모든 거리와 풍경이 사진 작품이 되는 곳, 파리. 그래서인지 파리는 포토그래퍼들이 매우 사랑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평소 사진에 관심이 많다면 파리 여행 중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전시관, 유럽 사진 전시관에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 마레 지구에 위치한 이곳은 유럽 사진 미술관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1950년대 말의 작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19년 4월 초 기준, 총 세 개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1층에서는 한국 작가의 전시가, 2층에서는 중국 작가, 그리고 3층에서는 스페인 작가 코코 카피탄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코코 카피탄은 1992년생으로 스페인 출생이다. 포토그래퍼이자 아티스트인 그녀는 현재 런던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런던 대학에서 사진학을 공부한 뒤 사진뿐 아니라 페인팅, 프레스코화, 핸드라이팅, 영상, 설치미술 등 다양한 예술적 분야를 탐구했다. 구찌, 디올 등 유명한 브랜드와도 콜라보한 경력이 있으며 보그 등의 잡지와도 협업하는 등 어린 나이에 매우 큰 업적을 남기고 있는 아티스트. 26세에 이미 구찌가 선정한 영 아트 스타가 되었을 만큼 그녀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최근 한국 대림미술관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라는 제목으로 코코 카피탄의 전시가 진행되었으며 평일에도 줄이 길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유럽 사진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코코 카피탄 전시는 프랑스에서 최초로 진행되는 것으로, 15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그녀의 예술적 영감, 현대 사회의 문제점 등을 그린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으며 컬러와 주제 별로 분류해 전시한 점이 인상적. 한국에서는 포토존처럼 꾸며진 부분도 많았다면 이곳은 작품 자체에 100% 몰입해서 볼 수 있도록 심플하면서도 집중적으로 전시해놓았다.
소비문화의 전형적인 아이콘 중 하나인 코카콜라 캔을 이용한 팝 아트. 길거리에서 우연히 찌그러진 콜라캔을 본 뒤 우리 일상에 이미 익숙한 그저 평범한, 버려진 콜라캔도 예술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세라믹으로 만든 콜라캔은 단순한 쓰레기가 아닌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코코 카피탄은 홀로 집에 있는 시간을 즐긴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것을 즐기는 아티스트. 스스로를 알기 위해 치열하게 탐구하고 노력하는 시간들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그녀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사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표현해낸 시리즈 중 하나. 코코 카피탄의 자화상 시리즈에서 보여지는 구도, 포즈, 색감은 모두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이 묻어난다.
보그 등의 유명 패션 잡지에 실린 작업물들도 전시 중이다. 코코 카피탄은 패션 포토그래퍼로도 유명한데 기존의 패션 사진들과는 다른 방식의 패션 화보를 선보인다. 패션 사진과 예술 사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예술과 상업을 결합시키는 등 팝 아트 이후 세대의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부분.
보통의 패션 화보는 로고나 옷의 디자인의 초점을 맞추는 반면 코코 카피탄은 옷보다도 사진 속의 상황이나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사진 속 왼쪽에서 세 번째에 있는 ‘Boys in Socks’라는 작품이 매우 유명한데, 보통은 양말에 초점을 두고 촬영하겠지만 코코 카피탄은 모델의 행동과 다리에 그려진 세탁물 표시에 더 눈길을 가게 촬영했다.
마치 수영장을 연상케 하는 사진 시리즈. 스페인 올림픽 싱크로나이즈 선수단을 촬영한 시리즈물로, 연습을 마친 선수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주 6일, 하루 10시간 고강도 훈련을 하는 선수단을 응원하고자 기획한 작품. 꿈꾸는 것을 이루려는 모든 이들의 노력을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과 메시지가 담겨있다.
코코 카피탄은 2017년 여름, 미국 서부 로드트립을 하며 텅 빈 폐허, 이정표가 없는 거리의 표지판, 버려진 길거리의 사물들을 보며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왜 모든 것들은 언젠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나는 죽지 않고 살고 싶다’라는 글을 적기도 한 그녀. 삶을 단순히 죽음으로 가는 여정으로 생각하지 않고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이해함으로써 현재를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삶, 죽음, 그리고 끝에 대한 코코 카피탄의 관점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으로 관람객들로 하여금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한 층 내려가면 또 다른 작가의 전시를 볼 수 있다. 렌 항 Ren Hang이라는 작가의 <LOVE, REN HANG>이라는 전시.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는 최초로 기획된 전시로 중국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이자 시인인 렌 항의 작품을 다루고 있다. 붉은색 등 다양한 컬러를 이용한 부분과 작가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이 묻어나는 작품들이 인상적. 자화상, 친구, 엄마를 담은 사진이 대부분으로 성적인 이미지나 죽음에 관한 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혁신적인 작가로 알려졌지만 2017년 베이징에서 자살을 해 충격을 준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강렬하면서도 신선한 작품 세계를 볼 수 있는 전시.
가장 아래층에서는 한국인 아티스트 장윤경씨의 전시도 볼 수 있다. 2018년 개최된 제1회 디올 뷰티 포토 어워드에서 수상을 한 작가. 한국, 중국, 일본,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의 학교에서 출품된 1백여 점의 작품 가운데 당당히 수상을 한 그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성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한강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이 인상적.
유럽 사진 미술관에는 편안한 관람을 위해 무료 락커가 준비되어 있다. 입장권을 구매한 후 계단 몇 칸을 내려가면 락커에 짐을 맡길 수 있다. 아직 관광객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파리지앵의 마음의 쉼터가 되어 주는 곳, 유럽 사진 미술관. 마레 지구에서 예술적 영감을 받고 싶다면 이곳을 방문해보자.
글, 사진 : 이유나
주소 : 5/7 Rue de Fourcy, 75004 Paris
교통 : 메트로 1호선 SAINT-PAUL 역
전시 기간 : 코코 카피탄 전시 2019년 3월 6일 - 2019년 5월 26일 / 렌 항 REN HANG 전시 2019년 3월 19일 - 2019년 5월 26일 / 장윤경 전시 2019년 3월 6일 - 2019년 4월 14일
오픈 시간 : 수-금 10:00-20:00 (목요일 22시까지) / 토-일 10:00-20:00 / 월-화 휴무
입장료 : 성인 10유로 / 만 26세 이하 또는 학생 6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