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세시대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보통 우리는 영주, 기사, 농노, 낙후되어 보이는 과학기술, 마녀사냥 등 어두운 면만 떠올려 흔히 이 시대를 '암흑 시대'라 부른다.
하지만 중세 특유의 신비로운 이미지 덕에 매니아층도 두텁다. 대도시에는 중세 흔적이 시간에 많이 지워졌지만 인적이 뜸한 지방은 아직도 숨결이 남아있는데,
지금도 수 백 년 전 모습을 잘 간직한 언덕 위 중세 요새 지역, 타른을 소개한다.
타른은 주변의 타른 강의 이름을 딴 행정구역 이름. 쉽게 한국의 ‘도’ 단위라고 보면 된다. 가장 큰 도시 인구가 5만명으로 인적이 적은 시골. 그래서 고기, 과일, 채소등이 신선함은 물론 시골 특유의 목가적인 분위기와 석회암과 사암으로 이루어진 언적지형, 그리고 그 위를 감싸는 포도밭과 과일나무가 이루는 풍경이 꽤 아름답다. 참고로 인구 5만명의 도시는 알비Albi로 오리고기가 매우 유명하다.
타른은 그림같은 자연경관 이외에도 아름다운 중세마을이 많아 파리에는 없는 또 다른 이국적인 매력이 돋보인다. 그래서 오늘은 자연경관보다는 타른의 중세적인 모습을 여러 마을을 둘러보며 소개해드린다.
이 부근에 특히 중세마을이 많은 이유는 위에 언급했듯 타른이 언덕지형이기 때문이다. 마을이 지어진12-13세기에 많은 전투가 일어났는데 때문에 외부 침입이 어려운 언덕에 마을을 형성하고 요새화한 것이다.
흔히 십자군전쟁이 예루살렘 주변에서 일어났다고 하는데, 프랑스에서도 작게 일어났다. 그 무대가 바로 이 타른 지역. 기독교의 한 교파인 순결파가 세를 넓히자 교황은 이에 위협을 느껴 1209년 당시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와 함께 ‘알비 십자군’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 순결파는 왕권과 교황권이 크게 미치지 않는 남프랑스 제후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는데, 때문에 왕과 교황이 영역을 넓힐 기회를 잡았던 것.
위에 언급한 « 알비 십자군 »은 이름 그대로 알비와 주변지역을 점령하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알비와 주변 마을은 요새를 만들었지만 결국 모두 점령당하고 순결파 신도와 성직자는 모두 학살당하고 만다.
이후 마을들은 18세기까지 번성하다 19세기에 이르러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마을은 옛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게 되었다.
코르드 쉬르 시엘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있는데, 구름이 내려다 보일 정도로 고도가 높다. 그래서 이름도 코르드 쉬르 시엘. ‘쉬르 시엘’은 ‘하늘 위’라는 의미다.
이 매력적인 마을은 차로 진입은 불가능해 언덕 아래에 차를 세우고 걸어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걸어올라가기 싫다면 투어 기차나 오디오가이드가 있는 투어셔틀을 이용해보자. 가격은 각각 3유로, 6.5유로.
코르드도 알비 십자군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요새마을로, 점령된 후에는 지역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그래서 많은 부자 상인이 이 마을에 고딕양식 건물을 짓곤 했는데 지금도 남아있어 주변을 거닐다 보면 중세시대로 온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또한 구시가지 문 주변으로 가보는 것도 잊지말자.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진다. 방문객이 꽤 있는 마을인 만큼 레스토랑과 상점도 많은 편이다. 진짜 수제품이 많아 기념품을 사기도 좋다.
아베롱 강변에 위치한 마을. 여기도 그림같은 경관을 자랑하는 중세도시다.
알비 십자군 전쟁 당시 순결파 신도들이 이 마을로 피난을 오게 된다. 이런 이유로 십자군의 표적이 되었지만 끝내 함락되지 않고 마을을 지켜낸다.
가파른 자갈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전쟁 당시 공격받아 파손된 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매년 여름 성 안에는 기사 전투같은 중세 이벤트가 벌어진다. 게다가 성은 중세 전문가들에 의해 꾸며지는데, 여기에는 중세시대에 쓰던 도구나 기법, 의복만 허용된다. 중세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을 좋아한다면 천국같은 마을이 되겠다.
브뤼니켈은 2차대전을 다룬 영화 ‘낡은 총’의 촬영지로 프랑스인 사이에서 유명한 도시. 두 개의 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쪽은 12세기, 나머지는 15세기에 지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반 돌집은 16세기에 지었고, 마을 도로도 대부분 몇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퓌셀시 마을은 숲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꼭대기에 있어 ‘숲 속 요새’라고도 한다. 덕분에 여기도 십자군의 공격에 버틸 수 있었는데, 이후 버려져있다시피 하다가 1950년대 거주민에 의해 복원되었고, 지금은 훌륭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코르드 쉬르 시엘은 차 없이는 가기 어렵다. 하지만 대중교통도 적지만 있기는 하다. 1) 알비에서 Corde sur Ciel행 707번 버스 (여름 한정, 1시간에 1대 씩 운행)
2) Montauban 역에서 Bruniquel, Penne, and Cordes행 (107 – 30번)
3) 툴루즈 관광 안내소에서 알비와 코르드 쉬르 시엘 투어를 한다. (3월 – 11월 /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하지만 차를 렌트하는 방법이 가장 편하다.
글 : 홍순민
사진 : Vincent Sac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