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예술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마레지구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피카소 미술관이 숨어있다. 이 미술관은 건물 자체도 특별한데, 1656년 '오텔 살레'라는 이름의 호화 호텔로 건립된 이후 여러 부유층의 손을 거치다 1985년 부터 현재까지 피카소 미술관이 자리하게 되었다. 국가 문화 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화려하고 유서깊은 건물이라 건축만으로도 방문할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는 피카소의 주옥같은 작품에 비하면 단지 배경일 뿐. 피카소가 평생동안 남기고 직접 기증한 회화, 조각, 크로키 등 4만 여 점에 달하는 막대한 양을 자랑하는 파리 피카소 미술관. 따라서 마레지구까지 와서 피카소 미술관을 그냥 지나친다는 것은 길거리에 떨어진 돈을 줍지 않는 일과 같을 정도로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아쉽지 않은 마레지구 여행을 위해 피카소를 간략히 소개하고, 피카소 미술관에서 봐야 할 전시와 작품 몇 가지를 추천드린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 피카소는 스페인 말라가에서 미술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나 처음 말한 단어가 '연필'일 정도로 유아시절부터 비범했던 피카소. 15세의 나이에 거의 모든 화풍을 배우고 쾰른, 바르셀로나를 거쳐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공부하는 등 어린 시절 스페인 최고의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다 피카소가 21세가 되던 1902년, 피카소는 세계 예술의 트렌드를 이끌던 파리로 입성, 여기서 앙리 마티스와 기욤 아폴리네르와 같은 당대 최고의 예술과와 교류하게 된다. 이 때 '입체파'라고도 부르는 큐비즘을 탄생시킨다 (큐비즘이라는 용어도 앙리 마티스가 만들었다).
여담으로 피카소는 몽마르트에 있던 '바토- 라부아'라는 예술가 주거지에 살았는데, 당시 몽마르트는 집값이 싼 데다가 물랑루즈를 필두로 여러 댄스홀이 생겨 일찍부터 자유로운 분위기가 풍겼다고 한다. 그래서 고흐,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등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고, 이런 이유로 현재에도 몽마르트는 예술가의 구역으로 남게 되었다.
피카소는 노년까지 화풍을 계속 바꾸어 나갔다. 그래서 '청색 시대', '장미 시대', '입체파', '흑백시대', 그리고 아프리카와 폴리네시아에서 영감을 받은 '원시 예술' 등 피카소는 생전 남긴 화풍만 십수가지. 파리 피카소 미술관은 이를 한 장소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올해 피카소 미술관의 상설 전시는 '칼더 - 피카소'로, 미국과 프랑스-스페인의 두 현대 거장을 공간이라는 공통분모로 잘 녹여낸 전시회다 (전시회 보기 클릭). 기획 전시로는 '낮의 피카소 - 밤의 피카소 Picasso Diurnes and Picasso Intérieur Nuit'가 준비되어 있는데, 피카소의 밝은 주제와 화풍을 낮으로, 어둡고 은밀한 주제를 밤으로 나눈 점이 흥미롭다.
2층에 전시된 낮의 피카소. '낮'으로 묶은 피카소의 작품은 하나같이 햇살이 스며들어있다. 고전주의, 큐비즘, 조각 등 다양한 표현방법도 눈여겨 볼 요소.
1920년 경, 피카소는 프랑스 남부 안티브를 여행한다. 지중해의 생기로운 햇살과 뺨을 간지럽히는 바람. 피카소는 여기에 매료되어 위 사진 오른쪽의 손 그림을 남긴다. 바다를 긁는 듯한, 석고 조각처럼 양감이 느껴지는 하얀 손. 그리고 아래의 무게감을 주는 또 다른 손. 실제로 피카소는 이 작품으로 당시 현장에서 느꼈던 에너지를 전달하고자 했는데, 힘이 느껴지는 흰 손가락과 아래 손의 덩어리감, 그리고 유난히 쾌활한 푸른색을 이용하여 자연과 생명의 힘을 작품에 불어넣은 듯 하다.
어디서 한 번은 본 듯한 피카소의 이 작품. 피카소의 다섯 번째 여인 도라 마르의 초상화다. 그림 속 여인의 형태와 색상이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보이는데, 이는 피카소의 피나는 노력이 그대로 담긴 결과물이다. 피카소는 더 이상 보이는 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인물이나 사물의 진실된 모습을 탐구했고, 그림에 담고자 했다. 다각도로 표현된 여인의 모습은 이를 잘 보여주는 단적인 요소로, 사물을 한 방향으로만 볼 때보다 여러 방향으로 보았을 때가 더 진실된 모습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편, 색상은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주관적 감정이 드러난다. 관찰자에 따라 다른 모습이라는 의미인데, 예를 들어 부모님, 형제 자매, 친구, 연인, 처음 만난 사람 등 '나'를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내 모습은 달라진다. 이렇게 작품에 나타난 도라 마르는 피카소의 눈에 비친, 피카소만의 도라 마르라고 할 수 있다.
3층으로 올라가서 밤의 피카소를 만나보자. 흔히 밤 중에는 이런 저런 상념에 빠지기 마련. 그래서 피카소의 밤 작품도 낮보다 어둡고 심오하다. 전시회의 원제인 'Interieur nuit'도 '밤 안(內)을' 의미. 한밤의 생각 속에 푹 빠진 피카소의 작품을 구경해보자.
밤의 피카소에는 특히 죽음이 두드러지고, 보다 깊은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생의 유한함을 뜻하는 정물화, 그리고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그린 게르니카의 요소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죽음과 슬픔, 즉 밤을 연상시키는 주제.
사진 속 작품의 주인공은 반인반수의 괴물인 미노타우르스. 신의 약속을 어겨 몸은 인간의 모습으로, 그리고 머리와 꼬리는 황소의 모습으로 미로에 갇히게 된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다. 평소 피카소는 소를 참 좋아했는데, 이 작품에는 소가 아닌 말의 머리를 달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신화 속 반인반수를 차용해 동물이면서 신처럼 행동하는 인간의 이중적 모습을 꼬집었으며, 얼굴은 고통스러워하고 다리는 어디론가 달리고 있는데, 마치 고통의 미로에서 벗어나려는 듯 하다.
파리 피카소 미술관은 파리지앵과 여행객 모두에게 인기가 많다. 그래서 오랫동안 줄을 서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미리 예매하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오봉파리 할인코드를 이용하면 돈도 아낄 수 있다). 오디오 가이드가 지원되고 외투 보관 서비스도 가능하다. 또한 기념품도 꽤 세련되게 잘 나온 편이다.
글 : 홍순민
사진 : 이유나
주소 : 5 Rue de Thorigny, 75003 Paris
교통 : 메트로 1호선 Saint-Paul 역 / 8호선 Saint Sébastien Froissart 역
전시 기간 : 칼더 - 피카소 특별전 2019년 2월 19일 - 2019년 10월 25일 / 피카소의 낮, 피카소의 밤 2019년 3월 26일 - 2019년 7월 14일
오픈 시간 : 화요일 - 일요일 10:30 - 18:00 (주말과 공휴일 9:30 개관)
입장료 : 일반 - 14유로 / 학생 - 11유로 / 만 26세 미만 유럽연합 국가 거주, 만 18세 미만, 매달 첫째 주 - 무료
오디오 가이드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 독일어, 중국어) : 일반 - 5유로 / 학생 - 4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