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첫 째주 파리의 밤은 하얗다고 한다. 몇 달 전부터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파리의 행사 뉘 블랑슈 Nut Blanche. 밤을 꼬박 지새고도 모두 못 볼 정도로 볼 거리가 많다고 하여 가볍게 산책에 나서 보았다.
올해 행사의 슬로건은 '함께 살자 Vivre ensemble'로 많은 아티스트들이 참여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미국과 함께 다인종 국가라는 뜻의 멜팅 팟(Melting Pot)으로 불리는 프랑스. 현대에 들어 아랍문화는 프랑스에서 함께가야 하는 문화가 되었다. 아랍 문화원은 '100명의 근현대 아랍 걸작 예술'이란 전시회와 건물 외부를 수놓은 조명예술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함께 살자 Vivre Ensemble'는 행사 슬로건에 맞게 시청에도 심오한 설치예술을 선보였다. 사진 속 컨테이너 박스들은 '무엇을 해야하나Chto Delat'라는 예술가 그룹이 만든 설치물로, 근현대에 일어났던 혁명을 위한 헌정 작품이라고.
설치물은 러시아 10월 혁명부터 최근 시리아의 아랍의 봄까지 많은 혁명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바리케이드는 길을 막는다. 하지만 길을 연다."
컨테이너 박스로 둘러싼 공간에는 시리아 민주화 혁명인 '아랍의 봄'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생 메리 성당 Église Saint-Merri
시청 주변 생 메리 성당에서는 조명 아티스트 듀오 CHILDREN OF THE LIGHT가 준비한 조명예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과연 입구엔 들어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겨우 인파를 뚫고 들어간 성당의 전경. 핏빛 조명이 사이키처럼 번쩍이며 석상과 스테인드글라스를 비추고, 웅웅거리는 음악도 함께 어우러져 성당 전체가 빛과 소리로 가득찼다.
그리고 뿌연 연기는 공연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더했다.
수많은 인파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진은 성당의 외관.
그리고 시청에서 멀지 않은 퐁피두 센터에도 많은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인도네시아 예술가 그룹 루앙루파 Ruangrupa의 작품이 인상적. '예술을 만들지 마라, 친구를 만들어라'라는 주제로 음악, 노래방, DJ 세트가 있는 수레를 설치해 놓았다. 이 설치물은 재활용품으로 제작되었으며, 인프라가 발달되지 않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역시 참여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고.
그 밖에도 호킨의 무료 전시회가 있었으나 최소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하니 전시회만을 위해 방문하려면 10유로 내고 사람 없는 날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랑 팔레에도 역시 평소 하던 전시회가 무료라 줄이 너무 길었고, 쁘띠 팔레에는 개인적인 행사를 하는 것 같았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 부근에 도착. 멀리 에펠탑이 보인다.
에펠탑은 하얀 밤이 아니어도 항상 반짝반짝 빛난다.
사실 이번 외출은 실패라고 할 수 있었다. 좋은 공연을 찾기 위해 발품을 더 많이 팔아야 했다. 하지만 365일 행사가 넘쳐나는 파리에서 이런 고생은 할 필요가 없다. 다른 날 더 좋은것도 많으니까.
게다가 에펠탑은 물론 루브르, 앵발리드 등 일반적으로 알려진 곳은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대체로 흥미로운 공연은 치안이 좋지 않은 구역에서 열렸기 때문에 여행객들에게는 크게 추천하지 않는다.
글 : 홍순민
사진 : 한재운